제7회 서울노인영화제 본심 총평
1. 노인섹션 부문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열리는 무수한 영화제들 속에서 서울노인영화제 만큼 가파르게 성장하는 영화제가 있을까 싶습니다. 출품작 수의 증가 뿐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노년에 대한 주체적 시각은 명확해지고 이야기 방식은 세련되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제7회 서울노인영화제에서는 38편의 본선경쟁작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18편의 노인 부문 선정작들은 각자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우열을 가늠하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영화적 만듦새 보다는 지금 이 시대 노인영화가 추구해야할 가치를 중요하게 고려했습니다. 선정작들은 노인이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습니다. 노인을 돌봄이나 시혜, 동정의 대상으로만 한정시켜왔던 고정관념들이 당사자들의 카메라 앞에서 부드럽게 밀려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심사위원들은 행복한 고민 끝에 다음의 작품들을 수상작으로 선정했습니다.
대상
<우리집 진돌이> (변영희 감독)
반려동물과 함께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이별의 순간을 예비하지만 함께 지내는 지금의 소중함을 말합니다. 삶과 나이듦에 대한 성찰이 돋보입니다.
우수상
<티격태격 알콩달콩> (신문신 감독)
삶도 즐겁고 그 삶을 담는 영화도 즐거워 그렇게 즐거움을 전염시키는 영화입니다. 삶에 대한 긍정과 낙관이 빛납니다.
장려상
<남제골 우물 이야기> (이성업 감독)
시골마을의 여성 노인들이 둘러앉아 젊은 시절 우물가 풍경을 회상합니다. 각자의 기억들이 복원해내는 것들은 단지 개인사 만이 아닌, 마을의, 공동체의 소중했던 문화와 역사입니다.
<다시 피는 망초> (손여일 감독)
대부분의 출품작들이 미디어교육 수료작들인 상황에서 노인미디어교육의 성과가 어떻게 발전해 나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지속적인 미디어활동을 진행해온 창작집단답게 기술적 완성도가 뛰어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는 끈질긴 기록정신이 돋보였습니다.
특별언급
<어느 할머니의 80년 오월 이야기> (국승임 감독)
노인 또한 시민이고 역사의 주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좋은 작품입니다. 다만 <남제골 우물 이야기>처럼 개인의 기억과 역사를 통해 80년 광주의 이야기를 풀어갔으면 영화가 더 풍부해졌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자식자랑> (박일 감독)
자식에 대한 속깊은 애정이 결국 소통되지 못하는 허망함을 잘 그려냈습니다. 아버지 캐릭터가 다소 전형적이라는 아쉬움은 있지만 동시대 노인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품입니다.
<까칠이와 더펄이> (최은화 감독)
소품, 연기, 무대, 대본 등 모든 부분에 있어서 성실성과 적극성으로 임했고 제작에 참여한 모든 구성원들의 열정과 만족스러움이 느껴져서 보는 이들도 영화를 만들고 싶어질 것같았습니다.
<황혼의 춘몽> (안재홍 감독)
노인들도 상상력의 제약없이 대단히 유쾌한 영화를 훌륭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2. 청년섹션 부문
20편의 일반 부문 선정작들은 고른 완성도를 보였습니다. 흥미롭게도 세 편의 영화가 요양원 관련 노인복지제도를 다루고 있었는데 병이 들었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국가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서글픈 현실은 노인 당사자 뿐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도 뜨거운 쟁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노인과 노인문화를 바라보는 전문영화인들의 다양한 작품들은 우리 사회의 큰 화두인 세대 간 소통의 가능성을 엿보게 해주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다음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대상
<동행> (황민아 감독)
요양원에 노부부를 모시고 있는 평범한 가족들의 솔직한 고백은 노인에 대한 따뜻하면서도 열린 시선을 느끼게 해줍니다. 부부가 따로 병실을 써야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손녀와, 막대한 비용을 부담해야하는 아들의 대화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팽팽한 대립을 보여주는 듯했지만 지혜로운 결말을 통해 노년에 대한 존중과 자식 세대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우수상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윤유경 감독)
자식세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결국 자식세대의 짐이 되고 마는 노인의 모습은 다양한 매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설정입니다. 이 영화는 비슷한 설정에서 시작하지만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갑작스런 동거가 불러오는 세대간, 고부간 갈등, 독립적인 공간을 잃은 노년의 구차함 등을 섬세하게 포착한 감독의 연출력을 심사위원들은 높이 평가합니다. 그리고 결국 주인공이 자신의 일도, 가족 안의 자리도 포기하지 않는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가 이뤄낸 특별한 성취입니다.
장려상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김형준 감독)
우리 사회에서 어버이연합은 진영논리를 견고하게 하고 세대간 갈등을 강화시키는 존재로 여겨집니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어버이연합이라는 집단이 아닌, 그 안에서 먹고 이야기하고 슬퍼하고 웃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줍니다. 소통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설득력있게 보여준 감독의 노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낙원동>(최진영감독, 김영수감독)
담배문제로 부딪쳤던 두 세대가 영화를 통해서 화해하는 과정은 ‘영화를 통한 세대간 소통’이라는 노인영화제의 주제와 가장 부합합니다. 처음 남자주인공은 군복을 입고 잔소리를 하는 전형적인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성큼 이해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비슷한 주제를 담은 두 편의 영화를 장려상으로 뽑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격랑의 역사를 살아온 노인세대의 모든 태도에 대해 젊은 세대들이 동의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 삶을 이해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입장입니다. 세대간 소통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는 측면에서 노인영화제는 이 두 편의 영화를 함께 지지하고 격려합니다.
심사위원 특별언급
<사부인>은 사돈 관계를 담고 있습니다. 자식들의 결혼 때문에 만들어진 사돈이라는 관계는 형식적으로는 매우 가깝지만 감정적으로는 불편하고 어렵습니다. 자식들의 가정에 갑작스레 닥친 불행 때문에 시작된 교류가 새로운 가족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이 영화 속 가족의 모습은 여전히 공고한 친족중심 혈연중심의 전통적 가족관계를 돌아보게 해줍니다.
<달구비>의 주제의식은 노인부문의 <자식자랑>과 통합니다. 속깊은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채 살아가다가 떠난 후에야 뒤늦게 자식들이 그 사랑을 알게 되는 아버지 세대의 애정방식은 동시대 노인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그러나 늘 회한이나 파국으로 끝나고야 마는 그런 식의 애정방식이 이제는 변화해야한다는 메시지도 건네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흰둥이>는 요양원 관련 노인복지제도를 다룬 세 편의 극영화 중 가장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줬습니다. 입체적인 캐릭터, 절제된 연기 등 훌륭한 점은 많았지만 영화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좀더 풍부한 내용과 표현을 담고 있는 <동행>과 소재면에서 유사했기에 아깝게 선정작에는 들지 못했습니다.
<절경>은 심사위원들 모두가 수작으로 뽑은 영화입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을 심사위원들은 높이 평가합니다. 언제 발밑이 꺼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선 자리. 뚫린 지붕 아래 놓여있는 가난한 모자의 슬픈 풍경. 자식의 안부가 궁금한 아버지의 반복되는 전화……. 그렇게 그려지는 노동자 자식의 고단한 현실을 통해 노인소외 문제를 개별가정이 아닌 구조의 문제로 바라보게 해줍니다. 한국 사회의 슬픈 현실을 훌륭하게 담아낸 이 빼어난 영화가 선정작에 들지 않는 이유는 ‘노인영화의 의제’를 발굴해낸다는 노인영화제의 의미 때문입니다. 심사위원들은 감독이 이뤄낸 빼어난 성취를 높이 칭찬합니다.
노인 감독이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문화생산자로 서는 것, 노인과 노인 문화를 새롭게 바라보는 것, 다양한 세대의 감독들 사이의 소통과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것. 이는 올해로 7회째를 맞는 노인영화제에서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출품해준 모든 감독들에게 깊은 감사와 열렬한 찬사를 드리며 노인영화제와의 만남이 감독들의 여정에 기쁨이 되었기를 소망합니다.
제7회 서울노인영화제 본심 심사위원
김혜준
류미례
맹수진
변재란
유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