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펼쳐지는 풍요로운 노년
2015년 서울노인영화제 예심 심사위원들은 총 147편의 응모작 중에서 41편의 본선경쟁작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년보다 작품수도 많았지만 전반적으로 완성도가 높아서 심사위원들이 즐거운 고통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노인부문은 예년에는 미디어교육을 통한 결과물들의 비중이 컸는데 올해에는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노인감독들의 참여가 돋보였습니다. 서울노인영화제 초창기에 초보감독으로 영상활동을 시작했던 미디어교육의 수료자들이 서울노인영화제와 함께 꾸준히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선정작들은 손자를 만난 할아버지의 기쁨, 인도가 없는 도로의 문제점, 이주민 가족에 대한 따뜻한 시선 등 자신의 삶과 이웃에 대한 다채로운 관심사를 엿볼 수 있게 해주어서 좋았습니다. 또한 전근대에서 근대로 빠르게 흘러왔던 한국사회의 변화상이 노인 감독들의 작품에 촘촘히 새겨져 있었습니다. 같은 남편을 둔 두 아내, 가출한 남편을 평생 기다린 헌신적인 아내와 같은 고전적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고 동시에 예전과는 달라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 평생 차려주는 밥만 먹다가 이제는 조리대 앞에서 요리를 하는 남편들의 변신 등을 엿볼 수 있어서 모든 영화는 시대를 기입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꾸준한 활동을 통해 전문 영상인으로 자리 잡은 노인 감독들이 자기 이야기의 진정성이나 독창적인 표현방식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주류미디어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내용들을 관성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진실한 감동은 테크닉보다는 노년의 지혜와 삶의 성찰에서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청년부문은 미학적으로 뛰어난 성취를 보인 작품들이 많아서 영화를 보는 재미를 선사해주었습니다. 극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각 장르에 수작들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어서 올해 영화제는 어느 때보다 풍성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심사위원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던 점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는 노인감독 당사자들이 다루는 노년은 흥겹고 즐거운데 청년감독들의 영화에서 그려지는 노년은 대부분 불행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소외된 노년의 서글픈 단면들을 예리하게 포착한 작품들도 있었지만 노인 감독들이 그린 노년에 비해 청년감독들의 노년은 어둡고 단조롭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둘째는 현재의 노인이 젊은 시절의 자신과 한 화면 안에 같이 있는 표현방식이 여러 영화들에서 비슷하게 보여진다는 점입니다. 심사위원들은 이 두 가지 공통된 경향을 보며 청년들이 노년을 내용면이나 형식면에서 피상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은 청년 부문 출품감독들에게 8회 서울노인영화제 관람을 추천합니다. 노년의 현실을 살아가는 노인 감독들의 관심사와 생활상이 얼마나 풍요롭고 얼마나 다채로운지를 직접 만나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와 이리 좋노>나 <실버벨>이 그려낸 사랑스러운 노년의 모습은 다채로운 현실과 맞닿아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셀푸카메라>는 자식사랑에 투철한 어머니, 호통 치는 아버지라는 관성적인 캐릭터가 아쉬웠지만 노부부의 속 깊은 정을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느낄 수 있어서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 밖에도 수많은 작품들이 심사위원들의 망설임 속에서 여러 번 거론되었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애니메이션들은 고르게 빼어난 성취를 보여서 응모한 모든 영화들을 다 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제한된 기회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몇 편만 골라야했습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국현대사를 조명하는 작품들이 많아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울노인영화제의 미덕은 노인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찍은 이야기들이라 노인들이 타자화되지 않는다는 점일 것입니다. 청년감독들이 찍은 영화 속 노년들 또한 타자화 되지 않은 채 자신들의 삶을 당당하게 보여줄 것입니다. 제8회 서울노인영화제가 펼쳐 보이는 영화 속 노년들의 삶이 관객들에게 어떤 기쁨과 어떤 깨달음을 줄지 기대됩니다.
제8회 서울노인영화제 예심위원 일동
류미례(다큐멘터리감독)
윤도연(미디어활동가)
임아람(사회복지사) 가나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