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노인영화제 심사평
제목 : 선배 시민부터 후배 시민까지
안녕하세요. 심사위원들을 대표해 이 자리에 나온 허남웅이라고 합니다. 저를 포함해 5명의 심사위원은 단편 경쟁 9개 부문에서 모두 41편을 작품을 보았습니다. 그중 노인과 청년 부문을 구분해 각각 대상 1편과 우수상 1편, 장려상 2편을 선정하였습니다.
선정 작품을 발표하기에 앞서 단편 경쟁작들을 보며 우리 심사위원들이 느꼈던 점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41편의 작품을 보면서 기술적으로 잘 만든 영화도 물론이지만, 삶에 대한 성숙하고 지혜로운 시선을 보여준 작품에 더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수상작 선정은 노인 부문과 청년 부문을 나누어 선정하였습니다. 심사하는 과정에서 꽤 의미심장한 시선을 발견했습니다. 어르신 분들께서는 어떻게 하면 더 세상을 재밌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와 다르게 청년들이 만든 영화의 상당수는 노인분들께서 직면한 육체의 노화와 사회 문제에 대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이와 같은 시선의 차이는 직접 경험한 어르신 분들과 그 나잇대를 경험하지 못하고 바라보며 간접 경험하는 청년 사이에 발생한 차이이겠죠. 우리 심사위원들을 이를 누가 옳고 그르기의 문제로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노인분들과 청년분들의 경험과 시선을 모두 느끼며 종합한 결과 아마도 우리 사회가 노인과 청년을 너무 분리해 사고하다 보니 생긴 결과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노인’이라는 단어가 주는 편견이 작용한 결과이겠죠. 그래서 우리는 ‘시민 Citizen’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어떨까, 라는 중론을 모았습니다. 시민은 결국 이 땅에 사는 우리 모두를 가리키는 말인데 하나로 묶는 개념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이를 노인과 청년 세대에 대입해 다시금 정리한다면, ‘선배 시민(Senior Citizen)부터 후배 시민(Junior Citizen)까지’가 되겠죠. 영화는 선배 시민과 후배 시민들이 같은 주제를 두고 필요로 하는 것 사이의 단절을 이을 수 있습니다. 후배 시민은 선배 시민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선배 시민은 후배 시민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 그래서 이번 서울노인영화제에 출품된 모든 작품은 ‘선배 시민부터 후배 시민까지’ 서울시민들의 의견을 모은 셈입니다.
그중 저희가 최종적으로 선정한 작품은 다음과 같습니다. 노인 부문 대상은 변영희 감독의 <밥상>, 우수상은 김윤종 감독님의 <결혼 말고 사랑>, 장려상은 노인자치연구소 은빛날개의 <백점짜리 내 인생>과 김금순 감독님의 <고추장과 미얀마엄마>입니다. 청년 부문 대상은 이란희 감독님의 <결혼전야>, 우수상은 정시영 감독님의 <골고다의 방>, 장려상은 김혜미 감독님의 <배다리뎐>과 허장휘 감독님의 <삼정동 인생사진관>으로 결정하였습니다.
노인 부문 대상으로 <밥상>을 선정한 이유는 영화적 완성도와 더불어 42년간 밥상을 차려준 아내를 위해 남편이 고맙다는 말과 함께 밥상을 차려주는 이야기가 감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우수상의 <결혼 말고 사랑>은 사회적 관습에 얷매이지 않고 결혼 대신 함께 살기로 한 영화 속 나이 든 연인의 결정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장려상의 <백점짜리 내 인생>과 <고추장과 미얀마엄마>는 각각 노인분들께서 정말 재밌게 영화를 찍고 있다는 인상이, 다문화 시대를 맞아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된 소수자를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시선이 호감을 샀습니다.
청년 부문 대상의 <결혼전야>는 결혼식을 하루 앞둔 딸과 어머니 간의 소소한 대화가 극의 전부를 차지합니다. 일상적인 이야기임에도 딸을 향한 엄마의, 엄마를 향한 딸의 애정이 담뿍 묻어나는 꼼꼼한 연출이 돋보였습니다. 우수상의 <골고다의 방>은 하루 살기도 버거운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접근해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 점이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장려상의 <배다리뎐>은 효에 대한 보편적인 의미를 다루되 독특한 이야기와 그림체로 깊이를 더하였습니다. 그리고 <삼정동 인생사진관>은 인생사진관이라는 공간을 통해 어르신들의 다양한 목소리와 삶을 다룬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수상작은 아니지만, 수상작과 견주어도 전혀 부족할 것이 없는 작품들을 특별히 언급하고 싶습니다. 노인 부문의 <감사원 앞 도로에 인도가 없다?>와 <세상에서 가장 긴 기다림>과 <아내의 애인>, 청년 부문의 <와 이리 좋노>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오종렬 감독의 <감사원 앞 도로에 인도가 없다?>는 영화가 어떻게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는지 직접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기다림>은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일반의 목소리를 통해 기록한 점이 여운을 남겼습니다. 박일 감독의 <아내의 애인>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소재의 이야기를 뛰어난 연출력으로 따뜻하게 이끈 점이 인상에 남았습니다. 또한, 류형석, 이덕균, 정태회 감독의 <와 이리 좋노>는 할머니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담는다는 손자(들)의 시선이 사랑스러웠고 최은솔 감독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자식과 손수 세대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할머니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말이 길었습니다. 수상한 감독님들에게 축하의 말씀을 전하며 수상에는 들지 못했지만, 서울노인영화제에 출품된 모든 작품에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 심사위원들은 이번 서울노인영화제를 통해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2015 서울노인영화제 수상작
<대상>노인섹션 “밥상” 변영희, 청년섹션 “결혼전야” 이란희
<우수상>
노인섹션 “결혼말고사랑” 김윤종, 청년섹션 “골고다의방” 정시영
<장려상>
노인섹션 “고추장과 미얀마엄마” 김금순, “백점짜리 내인생” 노인자치연구소 은빛날개
청년섹션 “삼정동 인생사진관” 허장휘, “배다리뎐” 김혜미
<관객심사단상>
노인관객심사단 “사랑받기위해태어난사람” 최은솔
청년관객심사단 “아내의 애인” 박일
청소년관객심사단 “불청객” 조우성
<관객상>
“와이리좋노” 류형석,이덕균,정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