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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노년의 삶을 어떻게 그려낼까: 올해 주목할 만한 해외 단편 작품들

올해 국내 영화제에는 유독 노년의 삶을 다룬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영화 뿐만이 아니라 요나스 요나손 작가의 [창문밖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시리즈처럼 보이는 스웨덴 작가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의 [메르타 할머니, 라스베이거스로 가다]와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까지 소설 판매 순위의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고령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동시대의 변화가 반영된 것일까요? [메르타 할머니, 라스베이거스로 가다]의 번역가 정장진의 '옮긴이의 말'의 빌어 "노인들이 범죄를 저지르기로 한 것은 소설 속이야기다. 하지만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기로 한 이유가 바로 <부자들은 갈수록 더 부자가 되고 없는 사람들은 갈수록 더 가난해지는 세상>때문이라면, 이 이유는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사회의 변화와 이념을 반영하는 영화는 픽션으로 가공된 현실이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시 말해 책과 영화가 만들어내는 비현실적 시공간은 사실은 현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질 수 밖에 없는 영화와 현실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죠.  


이런 관계 속에서 노년 세대가 영화의 주요 대상이 된 영화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쉽게 간과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곧 노년의 삶은 어떤 것인가,에 관한 문제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문제로 확대해서 생각해볼 것을 요청합니다. 나에게 먼 미래, 아직은 다가오지 않은 미래가 아니라 세대를 불문하여 현재의 우리들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영화를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죠. 


올해의 상영작들이 모두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해외의 주요 단편들을 통해 이러한 삶에 대한 문제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아시아의 영화들은 국내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경제적 빈곤과 가족의 무관심, 세대의 갈등은 대부분의 영화 속 소재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올해 부산국제단편영화제에서 상영됐던 태국의 티 타왓 따이파용위칙 감독의 <83 순비자이로 14호>는 가족의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지 굉장히 재미있는 가족 다큐멘터리로 보여줍니다. 집 어딘가에 있는 홈비디오와 사진들이 디지털카메라나 최신 영상기기들이 발달한 현재에 어떤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는데요, 올해 놓치지 않고 보아야할 해외 작품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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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을 다룬 극영화들의 특징 중 하나는 '생일'을 맞은 노인이 주인공인 작품이 꽤 많다는 점입니다. 글 서두에서 소개해드린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도 노인의 100번째 생일에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지요. 대개 생의 마감, 혹은 죽음과 함께 연상되는 세대의 풍경이 '생일'이라는 정반대의 의미로 표현된다는 점은 상기할만합니다. 대만의 리엔 지엔홍 감독의 <백 번째 생일>은 생일을 맞은 백 세 노인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무심한 가족들과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노인의 모습은 국내의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라 씁쓸하면서도 이 풍경이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지금 나는 그 속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질문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사회 계급에 의해 발생하는 문제도 함께 다루고 있기 때문에 영화의 층위가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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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번 주 내내 많은 관심 속에서 진행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된 필리핀의 진 쉐릴 타기야몬 감독의 애니메이션 <로렝 할머니>입니다. 8분 남짓의 짧은 애니메이션이지만 감독이 노년 세대에 던지는 질문과, 그 세대를 알고자하는 욕망이 유려한 그림체와 섬세한 감성으로 잘 표현된 작품입니다. 감독은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 온 친구와 함께 이야기하다가 위안부 여성의 문제를 고민하게 되었다고 제작 의도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할머니의 과거가 역사의 시련 속에서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상상한 이 작품은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성찰해볼 수 있는 것은 물론 한 개인의 삶을 인지할 때 영화라는 매체가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살펴보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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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울노인영화제는 10주년을 맞이하며 그 어느 때 보다도 다양한 상영작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획전과 풍성한 프로그램들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가 저물어가는 10월 쯔음, 뵙게 되겠지만 그 날까지 서울노인영화제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윤나리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