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장편초청 섹션은 2025년을 살아가는 노인과 젊은이들의 관계, 그리고 격동기의 한국사회를 내어볼 수 있는 4편의 작품이 초청되었다. 치매에 걸린 엄마를 돌보며 불안한 청년시기를 통과하는 주인공의 섬세한 감정연출이 돋보이는 <홍이>, 오래된 된 세탁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 속에 가족들의 숨겨진 마음을 다정하게 포착하는 <인생 세탁소>는 엄마와 딸 그리고 가족의 관계를 첨예하게 접근한다. 어머니의 가계부를 통해 한 가족의 역사를 담은 <어머니의 가계부>, 1960~80년대 영화제작사 남아진흥이 만든 60편의 영화를 재구성한 <코리안 드림: 남아진흥 믹스테이프>는 냉전과 부흥기를 거친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포착한다.
국제장편초청
올해 국제장편초청섹션에는 두 작품을 선보인다. <친숙한 손길>은 치매에 걸린 주인공이 바라보는 세계를 불안함이나 동정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가 창조한 또 다른 세계로 구성한다. <고스트라이트>는 가족 내에 벌어진 상실의 문제가 연극이라는 예술행위를 통해 애도의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특히 극 중의 리얼리티를 위해 배우의 친 가족들이 직접 등장해 훨씬 입체감 있는 관계를 보여준다. 상실과 회복, 그리고 기억을 담은 새로운 시선을 만나본다.
고전영화전: 영화, 문화유산이 되다
영화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시대와 문화를 기록하는 예술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그 가치가 퇴색되지 않는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특히 한국 고전영화는 우리 역사와 문화,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정서를 생생하게 담아내며 세대를 넘나드는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기에 2010년대 초반, 한국 고전영화 7편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공식 지정되면서 이들의 문화적 보존 가치가 더욱 널리 인정받기 시작했고, 이후 2024년 말, 추가로 4편의 고전영화가 문화유산으로 선정되어 총 12편이 국가등록문화재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서울국제노인영화제와 한국영상자료원은 이러한 한국 고전영화의 가치를 되새기고자 매년 <고전영화전>을 통해 문화적 소통의 장을 마련해왔다. 올해는 새롭게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4편의 작품을 특별히 선보이며, 이들이 가진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컬러 시네마스코프를 통해 전통 판소리 ‘춘향전’을 생동감 있게 구현한 작품에서부터 한국형 스릴러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강렬한 심리극, 한국전쟁의 상흔을 담아낸 역사적 기록, 그리고 산업사회의 도래와 인간 관계의 비극을 탐구한 작품까지. 이들 영화는 각기 다른 시대와 장르를 통해 한국 사회와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깊이 있게 포착하며, 관객들에게 예술적 감동과 문화적 통찰을 선사할 것이다.
세월따라 이야기따라: 변사프로그램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변하지만 이야기의 힘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어르신들의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며 큰 인기를 얻었던 <세월따라 이야기따라: 변사프로그램>은 올해도 관객들과 함께 한다. 올해는 청춘의 열정과 갈등, 사랑과 상실을 그린 안종화 감독의 1934년 작 <청춘의 십자로>를 변사의 유쾌한 해설로 만나본다. 오래된 필름에 깃든 시간의 흔적과 변사의 해설이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순간을 통해, 우리는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을 넘어 그 시대의 노스텔지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SISFF 명예의 전당: 배리어프리
삶의 끝자락에서 피어나는 존엄과 유머, 관계와 기억의 온기를 담아낸 다섯 편의 수작이 다시 스크린 위에 오른다. 제16회 서울국제노인영화제 수상작을 다시 만나는 ‘명예의 전당’은 노인의 현실과 감정을 밀도 있게 포착한 작품들을 통해, 노년의 시간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의료급여 심사에 흔들리는 일상부터, 노인돌봄로봇과의 기묘한 유산 소동, 뻥튀기 장터를 지키는 장인의 손끝까지—작품들은 소외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작지만 선명한 울림을 남긴다. 디지털 시대의 기록, 잊혀가는 풍경, 가족의 갈등,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의 위로. 이 영화들은 우리 모두의 내일을 위한 조용한 질문을 던진다.
* 배리어프리 영화란?
배리어프리란 장애인 및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물리적인 장애물이나 심리적인 벽 등을 제거하자는 운동 및 정책을 말한다. 여기서 배리어프리 영화는 기존의 영화에 화면을 설명해주는 음성해설과 화자 및 대사, 음악, 소리 정보를 알려주는 자막을 넣어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영화를 말한다.
기억아카이빙: 인생교환
청년감독의 카메라를 통해 어르신의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서울국제노인영화제만의 특별프로그램이다. 기억아카이빙 프로젝트는 역사책에는 나오지 않는, 그 시대 속의 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제17회 서울국제노인영화제에서는 산업화의 물결 속 지역사회를 일으켜 세운 새마을 운동에 참여하셨던 어르신의 생생한 이야기를 기록했다. 청년들의 시선으로 재구성된 영상은 한 세대의 기억을 오늘의 감각으로 연결하며, 세대 간 공감과 이해의 지점을 넓힌다.
도슨트 초이스 : 홈커밍데이
올해 도슨트초이스는 ‘홈커밍데이’를 테마로, 서울국제노인영화제의 역대 상영작 중 올해의 콘셉트인 ‘보물찾기’에 어울리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다시 꺼내어 보았다. 이번 선정은 단순한 재상영이 아니라, 관객과 도슨트가 함께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죽음이나 상실처럼 무겁고 침잠하는 이야기보다는,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작지만 소중한 감정들, 잊고 지냈던 기억, 누군가와의 관계처럼 인생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보물 같은 순간들’을 담고 있는 작품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국제교류전: 서울국제노인영화제 X 대만 가오슝 영화제
올해 서울국제노인영화제는 대만의 가오슝 영화제와 손을 맞잡고 특별한 교류전을 개최했다. 이번 교류전은 영화제 네트워킹을 확장하고, 아시아 영화 속에서 노인의 모습을 함께 탐구하기 위한 소중한 자리로 마련되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각기 다른 시각으로 그려진 노년의 삶을 비교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관객들에게 제공하고자한다. 가오슝 영화제는 대만을 대표하는 국제영화제로, 신진 감독들의 작품을 지원하며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영화들을 선보이는 무대로 자리 잡았다. 또한 동아시아의 문화적 정체성을 반영한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아시아 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고 있으며, 특히 세대와 삶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루는 작품들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교류전에서는 가오슝 영화제에서 선정된 네 편의 작품들을 상영하고, 상영 후 초청감독님과 함께 동아시아 영화 속 노년의 모습을 중심으로 한 씨네토크 시간도 준비되었다. 이번 교류전은 서울국제노인영화제와 가오슝 영화제가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노년의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자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