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서울노인영화제 예심평

2016년 서울노인영화제 예심 심사위원들은 총 189편의 출품작 중에서 39편의 본선경쟁작을 선정하였습니다. 작품 수나 완성도 면에서 출품작들의 면모는 나날이 풍성해지는데 한정된 작품만을 뽑아야만 해서 안타까웠다는 말씀을 먼저 전합니다.

노인부문 선정작들은 어느 때보다 소재 면에서 다채롭습니다. 사별한 아내에 대한 그리움, 고된 시집살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향한 사부곡처럼 아무리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 가족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또 장애문제나 부양의무제, 노년의 노동, 무슬림에 대한 속 깊은 이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산사의 풍경이나 마을 만들기로까지 확장된 노인감독들의 관심들을 만나고 나면 노인영화제의 또 다른 위상을 생각하게 됩니다.

노인영화제의 노인감독들은 주류미디어에서 쉽게 그려지고 있는 평면적인 노인상(像)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이웃과 가족,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은 동시대인으로서, 동시에 더 많이 산 인생선배로서 노인감독들의 자리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거친 화면에 숨어있는 혜안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입니다.

늘 그렇듯이 올해 출품작 중에도 미디어교육 결과물들이 많았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올해에는 예년보다 적은 수의 작품들을 선정했습니다. 미디어교육은 카메라로 이야기하기를 배우는 장입니다. 올해에는 ‘이야기하기’에 주목했습니다. 카메라에 압도되지 않고 카메라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그리고 즐겁게 자신을 표현한 작품들을 주로 선정했습니다.

청년 부문 작품들 또한 좋은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선정을 위해 모였지만 영화에서 받은 감동들을 나누며 행복해했습니다. 올해에는 유독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 조손가정, 세대공감에 대한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세상의 변화가 영화 안에 스며들어 있어서 ‘영화는 시대의 창’이라는 문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선정된 작품 속 노년의 주인공들은 점점 좁아지는 자신의 입지에 슬퍼하면서도 크게 한 번 지르며 세상에 호통을 치기도 하고 쉽게 상상 못할 자신만의 자리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만남에 연민어린 애틋함을 표현하기도 하고 깊고 오랜 사랑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또한 가족이든 아니든 세상의 약한 존재들을 감싸 안는 노인 캐릭터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한때 각광받던 직업들이 조용히 스러져가는 모습을 정성껏 담은 작품들이 많았던 반면 새로운 직업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직업이든 사람이든 한 때 그 자체로 빛났던 존재들에 대해 예의를 표하는 작품들이 많아서 고마웠습니다.

반면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노인들이 기능적으로만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영화들을 보면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올해 출품작들은 미학적 완성도나 인권감수성 측면에서 다채로운 면모를 보였습니다. 선정된 감독들에게 열렬한 지지와 축하를 보냅니다. 동시에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지금, 여기의, 노년에 대한 인식지형도를 읽을 수 있게 해준 감독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관객여러분께서는 제9회 서울노인영화제에 오셔서 그 기쁨과 깨달음의 순간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제9회 서울노인영화제 예심위원 일동